제목 국방TV다큐멘터리 "나는 대한민국군인이다" 경남지부 활동편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7-22 10:30 조회수 968
올해는 6.25 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되는 해다. 조금씩 잊혀져 가는 역사, 이제는 고령으로 하나둘 돌아가시고 있는 6.25 전쟁 참전용사들, 지금이라도 우리 곁의 영웅들을 찾아야 할 때이다. 한국전쟁 70주년, 우리가 간직해야 참전용사의 기억과 기록을 살펴본다.
올해 88세인 이상재 옹은 50년 7월, 2사단으로 입대했다. 당시 나이 열일곱. 한창 학업에 열중해야 하는 나이였지만 소년은 연필 대신 총을 손에 쥐었다. 나라를 빼앗기면 안 된다는 생각 하나로 군에 입대한 소년병.
당시 같이 입대한 고향의 친구들은 약 다섯 명 정도였다고 한다. 입대해 처음 투입된 전투는 안동 전투였는데 그 유명한 낙동강 방어선이다. 1950년 8월, 남한 땅을 점령하기 위해 진군해 온 북한군을 막아서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이었다. 치열한 전투에서 끝까지 싸워 지킬 수 있었던 낙동강 방어선. 이 낙동강 전투 이후에 인천상륙작전이 벌어지고 그때까지 우세였던 북한군의 기세는 꺾여 전쟁의 판도가 바뀌는데 그 기점이 된 것이 바로 낙동강 전투이다. 낙동강 전투가 벌어진 후 보급망이 끊긴 상황에서 게릴라전을 펼쳤던 북한군의 공격은 극렬했는데 당시 많은 학도병들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이상재 옹은 낙동강 전투는 물론 강원도 철원의 오성산 전투에서도 맹렬하게 싸웠다. 오성산 전투는 6.25 전쟁 당시 최고 격전을 벌인 곳으로 손꼽히는 전투.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이 전투에서 이상재 옹은 적이 던진 수류탄에 그만 부상을 입고 말았다. 아직도 그때의 파편을 몸에 지니고 있는 할아버지. 그의 희생은 화랑무공훈장이 말해준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군인으로 복무했으며 제대 후 30년 가까이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경남지부에서 활동하고 있다.
다치고 병든 참전용사를 살피고 돌아가신 참전용사들의 장례의식을 돕는 선양사업을 펼쳐 온 무공수훈자회. 오늘도 무공수훈자회의 활동을 따라가다 보니 돌아가신 분과 6.25 전쟁 때 부상을 입은 분들을 만나게 된다. 70년 동안 뜨거운 전우애를 간직해 온 이상재 옹을 따라 6.25 참전용사들의 이야기들을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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